여행

"입산금지 해제" 소식에 가장 먼저 가본 곳

myview7264 2025. 5. 26. 14:14

청도 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쌓은 대구 앞산 용두토성

 

 

뷰토안내판 뒤로 용두토성 중심부가 보인다 ⓒ 김명희관련사진보기

 


거의 두 달쯤 전인 4월 1일 "입산 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산불 예방 차원의 불가피한 행정명령이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다. 집 근처 앞산을 거의 매일 찾았던 필자에게도 "입산 금지"는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5월 17일 풀렸다. 그 사실을 그로부터 일 주일도 더 지난 5월 25일에야 알았다. 입산 금지 조치가 계속되면서 신천 강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일상 생활을 바꿨는데, 그 탓에 "입산 금지" 현수막들이 철거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4월 1일 입산 금지, 5월 17일 입산 허용

지난 5월 25일도 출입 허용 구역만 거닐다 귀가하려는 생각으로 고산골을 찾았다. 그런데 고산골 들어가는 초입에 늘 붙어 있던 "입산 금지" 현수막이 사라지고 없었다. "입산 금지가 풀리면 제일 먼저 용두토성부터 가 봐야지!" 하고 날마다 별려 왔는데, 그곳에 붙어 길목을 막고 있던 현수막이 철거되고 없는 것이었다.

그제야 주위 사람에게 물으니 "지난 17일부터 입산 금지가 해제됐잖아!"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고산골 성불사 쪽으로 가려던 계획을 대뜸 용두토성으로 바꾸었다. 물론 필자가 용두토성을 좋아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널부러진 돌무더기가 이곳이 성 유적임을 알게 해준다 ⓒ 김명희관련사진보기


용두토성에는 고산골 유일의 '역사'가 있다. 아들을 얻지 못한 신라 임금이 백일 기도 끝에 득남을 한 보답으로 삼층석탑을 세워줬다는 법장사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다. 가뭄을 이기기 위해 진심으로 빈 마을사람들의 정성이 통해 샘이 셋이나 펑펑 물을 쏟아냈다는 삼정골 이야기 역시 '민담'일 따름이다.

그에 견줘 용두토성 이야기는 생생한 사람의 '역사'다. 성 바로 앞만이 아니라 성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도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은 그만큼 용두토성이 답사할 만한 역사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안내판의 해설을 읽어본다.

용두토성은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신천변 길목에 위치한 용머리처럼 이어진 산줄기에 쌓은 산성으로, 청도 방향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에서 석축 형태가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볼 때 토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성 둘레 약 981m, 면적 약 35,226㎡이며, 길이는 남북 약 443m, 너비 21∼126m이다.

성 안에는 주변 일대를 살펴보고 경계를 할 수 있는 보루 2개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평지가 있고, 발견된 기와와 토기 편들로 보아 성 안에는 사람들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성의 조성 연대는 보루 주변에서 발견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도는 대구의 남쪽이다. 통일신라 때 남쪽에서 쳐들어올 적은 왜구빆에 없다. 신라 남쪽에 있던 가야는 이미 법흥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고, 그 나라 마지막 임금의 증손자가 김유신이다. 즉 통일신라 시대에, 그리고 고려 시대에 왜구 말고는 대구를 남쪽에서 공격할 적은 있을 수 없다.

박혁거세 때부터 우리나라를 침략한 왜구

끈질긴 왜구의 침략은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다. 박혁거세왕 시절부터 왜구가 침입을 해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서 <삼국사기>를 찾아보니 "(박혁거세왕 재위 8년) 왜구들이 군사를 이끌고 변경을 침입했다가 시조(혁거세왕)에게 뛰어난 덕이 있음을 듣고 돌아갔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혁거세왕에게 뛰어난 덕이 있음을 듣고 돌아갔다'는 기록은 내용상 혁거세왕의 군대가 예상보다 막강한 것을 알고 싸워서 참패할 것이 뻔했으므로 스스로 철수했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적국 최고 지휘관이 덕망 높은 인물이라는 이유로 침략군이 자진헤서 되돌아간 사례는 아마 세계사에 없을 것이다.

물론 혁거세왕 8년을 기원전 50년으로 기술한 김부식의 지나침은 비판받을 만하다. 그래도 왜구가 신라 시조 혁거세왕 시절부터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일 터이다. 본인 스스로 "고기(古記,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옛 기록)"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왜구 침입을 증언하는 대구 앞산 용두토성

 

용두토성 일부 ⓒ 김명희관련사진보기


필자는 대구 앞산 고산골 용두토성을 왜구 침입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고대 산성으로 본다. 만약 그런 생각이 사실과 다르다면,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에 선조들이 이곳에 축성을 했을 이유가 없다. 그런 믿음으로 필자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 입산금지가 해제된 즉시도 또 왔다.

물론 석성이 아니라 토성이고, 아주 오래된 것이고, 조선시대에는 잊힌 산성이었던 관계로 지금 성곽 등이 대단하게 남아 있지는 않다. 그래도 성벽돌로 보이는 돌덩어리들이 무수히 뒹굴고 있고, 좌우로 신천과 고산골이 절벽을 형성하고 있어 오금이 저릴 만큼 산성 분위기는 뚜렷하다.

그런 뜻에서, 대구 앞산 고산골을 찾는 분들께 바람직한 등산 순서를 소개드릴까 한다. "용두토성> 법장사> 공룡발자국, 연흔, 건열 화석> 메타세콰이어 길"이다. 아래서부터 올라가며 이것저것 살피면 최종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지친다. 일단 최종 목적 지점에 오른 후 내려오며 천천히 답사를 해야 운동도 되고 여유있게 구경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