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상동 '청동기 마을'을 찾아가보니

대구광역시가 지난 1월 '대구 역사 총서 제 1권'으로 펴낸 《한 손에 들어오는 대구 역사》를 몇 달째 읽고 있다. 400쪽 넘는 두께에다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나누어 집필한 책이라 그런지, 부제처럼 '한 손에 들어오는' 느낌은 받을 수 없고 독서 속도가 매우 느렸다. 여러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60쪽을 헤매고 있다.
제 1장은 '총론'이고, 제 2장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초기 철기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보니 대구의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유물은 출토되었지만 국립대구박물관에 가야 실물을 볼 수 있는 모양이다. 발굴 현장의 생생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고인돌 유적지라 한다.
고인돌은 "무덤으로 역할뿐만 아니라 집단의 영역에 대한 배타적 점유를 강조하기 위한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사회적 전략을 반영한다"라는 대목이 호기심을 끈다. 고인돌이 무덤이면서 동시에 다른 부족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위세용 장치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책은 대구 지역 고인돌로 시내의 상동, 이천동, 대천동, 신서동, 달성군의 평촌리, 천내리, 냉천리, 군위군의 화본리 것을 소개하고 있다. 대구 고인돌들은 "주로 신천 등 작은 하천 인근 자연제방이나 충적대지에 분포"하는데 드물게는 달성군 설화리 것처럼 "주변 평지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입지"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상동 청동기 마을'에서 크게 실망
답사여행 분야에 관심이 많은 지인에게 물어보니, "움집터와 고인돌 하부 무뎜 모형을 설치해둔 수성구 상동 '청동기 마을'이 최고"라 한다. 그래서 그곳을 찾아갔다. 정화우방팔레스라는 아파트 단지의 뒤뜰 공원이 '청동기 마을'로 조성되어 있었다. 과거에 정화여자고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과연 둥글둥글한 돌을 겹쳐서 만든 돌관과, 납작한 돌을 한 줄로만 세워서 만든 다른 형태의 돌관, 그리고 부족끼리의 전투 과정에서 불에 타 무너진 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커멓게 변한 나무들을 여기저기 흩어둔 움집터 모형은 아주 볼 만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학습 애정을 가진 답사자가 호의를 가지고 애써 내릴 때 것일 뿐, 일반시민이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좋지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릎까지 자란 쑥대 등을 두 손으로 걷어내는 수고를 해야 움집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무성한 잡초에 가린 고인돌들은 덮개돌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둑판식인지 알 수가 없다. 본래 잔디밭이었을 텐데 어쩌다가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안타깝다. 특히 초등학교 인근에 설치된 청동기시대 유적지가 이토록 어수선하다는 점은 유난히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교육적으로도 좋지않을 것이 분명하다.

《대구 역사》 '총론'에는 "대구 일원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점을 과거 오래도록 신천이나 진천 주변 일대에 산재한 지석묘(고인돌)나 유물 산포 상황을 근거로 삼아 흔히 기원전 8-7세기부터 시작하는 초기 청동기시대로 추정해 왔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는 대구 지역 역사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인돌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말해주는 소개이다.
그러나 '상동 청동기 마을'의 현재 상태는 대구광역시가 공식적으로 발간한 책의 그같은 표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고인돌들이 잘 관리되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수준을 말해주는 한 가지 사례일 것이다. 잡초에 파묻힌 움집터와 고인돌들이 하루빨리 밝은 모습을 햇빛 아래에 드러내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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